8월 28일 부터 9월 3일 까지 갤러리 내일에서 이정아 초대전
'살아있는 빛의 시간'이 열립니다.
해바라기, 장미, 제비꽃. 더 나아가 어리연, 절굿대, 금잔화까지. 세상에는 수많은 꽃의 이름이 있다. 그 이름들은 대체 누가 붙였을까? 아마도 꽃을 사랑하는 식물학자일 것이다. 그들은 숨어있던 꽃을 발견하고 이름 붙여 주었다. 덕분에 우리는 꽃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비로소 꽃의 생명력이 우리의 삶속에 깊숙이 들어와 더불어 아름다운 공존을 시작한 것이다. 나의 예술은 여기서 출발한다.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며 얻은 결론은, 결국 예술 그 자체에 대한 어떤 명확한 해답이 아닌 여정 그 자체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 꽃의 이름을 불러주고, 까만 밤하늘 빛나는 별들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그들 각자의 자리를 알려주듯이 내가 생각하는 예술도 숨겨져 있던 생명을 발견하고 이름 붙여 주며 그들 각자의 존재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태어나 죽는 그 순간까지, 생성과 소멸이라는 모든 생명의 숙명적 운동을 성실하게 담아내는 것. 나는 여기서부터 출발하기로 했다.
작가노트
Shape, 90.60cm, scratch &acrylic on brass plate, 2018, 300만원
Shape, 53x45cm, scratch &acrylic on brass plate, 2019 100만원
Shape, 60x40cm, scratch &acrylic on brass plate, 2019, 100만원
Shape, 120x120cm, scratch &acrylic on brass plate, 2019 800만원
Shape, 162x130cm, scratch &acrylic on brass plate, 2019 800만원
Shape, 45x20cm, scratch &acrylic on brass plate, 2019 100만원
Shape, 120x25cm scratch &acrylic on nickel plate 2019 200만원
120x25cm scratch &acrylic on nickel plate 2019 200만원
Shape, 116,7x78.0cm scratch &acrylic on nickel plate 2019 500만원
Shape, 116,7x78.0cm scratch &acrylic on nickel plate 2019 500만원
*작품 구매 문의나 더 많은 작품이 궁금하신 분은 02.2287.2399 로 연락주시면
친절히 상담해드립니다.
<전시전경>
<평론글>
살아있는 빛의 시간
-이정아의 회화세계
글: 서길헌(미술비평, 조형예술학박사)
니켈, 황동, 백동 등의 얇은 금속 플레이트 평판은 우선 깨끗한 평면의 세계를 예비하고 있다. 작가는 그 매끄러운 표면을 샌딩작업으로 거칠게 마감하여 아크릴의 안료들을 받아들이는 미세한 주름들을 마련한다. 그렇기는 해도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평평한 면이다. 그 위에 여러 색소들이 단단하게 점착된다. 금속 플레이트 자체의 깔끔한 평면이 갖는 완벽한 매끄러움 때문에 그 위에 덧칠해지는 안료들이 발하는 효과는 코팅된 사진과 같은 평면의 매체가 내뿜는 듯한 비물질적인 광택을 띠고 있다. 이와 같이 금속판은 그 자체로는 완벽하게 2차원적 평면을 구현하지만 거울과 같은 3차원의 잠재적 투시공간을 갖추고 있다. 더욱이 부분적으로 그라인더나 샌딩머신 등으로 미세하게 긁어낸 금속판의 표면에서 떠오르는 빛의 홀로그램 효과는 화면을 문득 4차원의 공간으로 비약시킨다. 캔버스천의 이미지들이 그 자체의 공간 내부로만 축소될 뿐임에 반하여 그녀의 금속판 위의 그림은 베이스로 사용된 재료의 이질적인 마티에르가 쏘아내는 다성적(polyphony) 효과에 의해 그림 밖의 잠재적 공간으로까지 확대된다. 이 효과는 그림을 지상에 존재하는 풍경을 뛰어넘어 곧바로 우주나 심연 또는 꿈과 같은 무의식의 풍경과도 접속시킨다.
이정아의 그림을 이루는 기저는 기본적으로 세 개의 층위로 되어 있다. 우선 평면의 금속판 재료가 지탱하는 실재적인 층위와 그 위에 얹히는 두 번째 안료의 층위, 그리고 안료에 뒤덮여 매몰된 바닥을 뚫고 솟아나는 질료의 숨겨진 속성이 빛을 말하는 잠재적 층위이다. 각각의 층위는 서로 다른 차원에 있으면서 서로 함께 맞물려 총체적인 풍경을 이룬다. 특히 완성된 풍경을 떠도는 빛은 혼돈을 찢어내고 그 틈으로 열리는 새로운 차원의 출구이다. 그것은 "사건"으로서 세계 안에 던져지는 감각의 문이다. 사건은 직선적인 시간에 극적인 위상을 부여하는 시간의 강세부호이다. 몽환적인 풍경 위에 그라인더의 날이 번개처럼 할퀴고 지나가며 흔적을 남긴 표면을 통해 금속판은 자신의 물성을 아주 잠깐 드러내어 보인다. 대개의 작품에서처럼 금속판 자체는 캔버스천과 같이 바닥에 묻혀서 풍경을 떠받쳐주는 보이지 않는 토대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에서 이 철판은 이러한 기반으로서의 역할에만 그치지 않는다. 물감으로 덮여있는 표면을 뚫고 잠시 노출된 금속판은 극히 일부로서 전체를 지배하리만치 충분하게 그 강한 물성을 드러낸다. 그러기에 작가는 최소한의 자국만으로 그 빛의 효과가 전면에 이르도록 그 영역을 제한하고 있으며 이때의 금속이 내는 빛은 직선으로 이행하는 시간의 지루한 몸통을 단칼에 잘라내는 시간의 예리한 단면과도 같다.
그녀의 그림에서 색면(色面)은 그대로 풍경의 기층이 되기도 하고 비어있는 공간적 여백이 되기도 한다. 서양화에서 공간은 오랫동안 형상의 구축을 위해 희생되어왔지만 추상표현주의와 색면추상에 이르러 그 회화를 구성하는 사각의 창으로부터 스스로 솟아나는 자발적 공간으로 진화하였다. 이에 더하여 이정아의 공간은 바닥을 이루는 금속판으로부터 나타나는 빛의 효과를 과감하게 차용함으로써 화면의 바닥과 표면을 하나의 평면에 아우르고 확장한다. 이로써 그녀의 회화에서 공간은 물질성이 비물질성으로 이행하는 자리가 된다. 그것은 새로이 생성되는 살아있는 시간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색면은 아크릴 스프레이 작업과 다양한 마티에르의 흔적을 드러내는 오브제의 사용에 의해 중첩된 공간으로 변이되어 준비되고 여기에 부분적으로 금속판에서 떠오른 반사효과가 더해져 블랙홀과 같은 비물질적 공간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효과들은 마치 히말라야 연봉이나 노호하는 심해의 장엄한 파도를 연상시키는 작품 등의 구상적인 요소에 적절하게 부가되어 그녀의 작업을 또 다른 세계로 끌어올려 보이지 않는 차원과 연접시킨다.
작가 이정아는 그리고자 하는 풍경을 몽상으로 꿈꾸는 시간을 대신하여 방호복과 방독면으로 무장하고 그라인더와 샌딩머신 등의 장비를 갖추고 금속평판과 대면하여 보석을 채굴하듯이 거칠지만 집중력이 요구되는 작업을 수행하여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빛나는 결과물들을 얻어낸다. 그렇게 얻어진 풍경들은 일상 속에서 오랫동안 작가의 의식을 떠돌다 일거에 금속판의 표면 위에 정착되어 구체화된 이미지들이다. 그 짧은 작업시간은 그러므로 그녀가 겪어온 모든 시간들의 층위를 한꺼번에 쏟아내는 함축적인 시간이다. 그를 위해 작가는 자신이 포착하고자 맴돌던 의지 속에 움터온 여러 층위의 이미지들을 일순간에 재배열하여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세계의 혼돈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돈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비정형인 상태로 작가의 의식을 떠돌던 이미지들은 구체적인 색과 형의 모습을 갖추고 외부로 나타난다. "나타남"은 어딘가에 있던 무엇인가가 어떤 계기를 통하여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이미 예비하였던 부분과 나타남으로써 보이는 결과 사이에 그것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는 사건이 자리한다. 이 사건은 작가의 포화된 의식을 끌어올리는 건곤일척의 작업으로서 작가는 보조 장비들을 총동원하는 집중적인 작업을 통해 이 순간을 한꺼번에 의식의 화면위로 낚아 올린다. 따라서 작가로서 그녀의 작업은 일견 거친 행위를 동반하지만 그것은 충만하고 엄중한 일종의 의식(儀式)과도 같은 것이다.
이렇게 하나씩 작가에게 소환되는 새로운 풍경들에는 멀리 꿈속에서처럼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의식과 영혼을 순식간에 빨아들일 것만 같은 이상한 늪지대에 혼령처럼 서있는 나무들 위로 내리치는 번개와 천둥, 그리고 문득 번쩍이는 빛의 다발들이 있다. 빛들은 색채의 풍경으로 가득 채워진 세계를 비집고 여기저기서 새어 나와 광채를 발한다. 이는 혼돈의 세계에서 문득 솟아나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빛이다. 이렇게 화면을 뚫고 새어 나오는 빛은 자체의 힘에 의해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그것은 어둠이나 혼돈을 헤치고 밖으로 향하는 내적인 힘이다. 그 힘, 또는 빛의 근원은 어디일까. 그것은 아마도 작가의 내면이자 동시에 질료가 간직하고 있는 숨겨지고 잊혀진 힘일 것이다. 그 빛을 준비하기 위해 작가는 우선 천지창조와도 같은 혼돈의 카오스를 그려낸다. 그것이 때로는 구체적인 풍경의 모습으로 보이는 것은 이 세계의 혼돈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작업에서 그것은 생성적인 혼돈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혼돈의 시대, 혹은 혼란의 세계를 말하고 있지만 그녀의 혼돈은 더 높은 시야에서 바라보는 창조적인 카오스이다. 이따금씩 그러한 혼돈을 뚫고 올라오는 빛, 또는 광휘(光輝, éclat)는 앙리 말디네(Henri Maldiney)의 표현처럼 응고된 빛이 아니라 방사(放射)하는 빛이다. 그러한 빛은 안으로부터 새어 나와 밖으로 점점 환하게 퍼져가는 그 무엇이다. 그것은 바로 작업을 통해 작가가 살고자 애쓰는 살아있는 빛의 시간이다.
인류를 편의보다는 끊임없는 속도경쟁으로 다그쳐서 고단하게만 했던 산업화 사회가 저물어가고 정보화 사회 또한 그 극점에 이르러 이제 인류는 5G 이동통신 문명의 문턱에 와 있지만 세계는 그만큼이나 부정적 혼돈상태인 엔트로피가 가속화되어 모든 것이 뒤섞이고 서로 간섭하여 점점 더 무채색의 비생성적 세계로 퇴행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아름다움이란 이러한 비극적 속성을 품고 있을 수밖에 없는 지도 모른다. 세계는 이미 고전적인 이야기구조나 최소한 평면적 회화가 획득한 인공적 통일성의 한계를 까마득하게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작가가 아날로그 장비로 무장하고 과감하게 캐어내는 추상이기도 하고 익명의 풍경이기도 한 혼돈의 정경은 오늘날의 세계가 감추고 있는 오만한 무질서에서 오는 비극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오마주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녀가 사용하는 동판이나 니켈의 평판이 숨기고 있는 금속의 차가운 물성으로부터 변용되어 나타나는 살아있는 빛의 시간은 내재된 물질의 실재적 힘을 가리고 있는 허영으로 가득한 가상의 현실에 틈을 내고 솟아오르는 신랄한 섬광과 같다.
이정아 Lee jeong A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회화과 석사
개인전 17회
단체전
2020 화랑미술제(삼성코엑스몰)
2016~2019서울아트쇼 부스전(삼성코엑스몰)
2018 성남 아트페어(성남아트센터 갤러리808)
2014~17 서울모던아트쇼 부스전(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외 다수
해외아트페어
2019~2020 벨기에 어포더블 아트페어(브뤼셀, 벨기에)
2019 마이애미 아쿠아 아트페어(마이애미, 미국)
2018 싱가폴아트페어(싱가폴)
2018 칸아트페어(칸,프랑스)
2018 뉴욕어포더블 아트페어(뉴욕챌시,메트로폴리탄 파빌리온,미국)외 다수
수상
제36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제13회 국제종합예술대전 (대상)외 다수
현재 한국미술협회,서울미술협회,성남미술협회
Tel. 02. 2287 2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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